서론: 주님, 가장 아픈 곳으로 오시다
사랑하는 힐링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 이 밤,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오셨습니까? 아마 이 자리에 앉아계시지만, 어깨며 허리며 무릎이며, 성한 곳보다 아픈 곳이 더 많으실 겁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바로 그런 우리네 이야기와 참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권위 있는 말씀을 가르치신 후, 어디로 가셨습니까? 영광과 환호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당시 가버나움의 집은 어떤 곳이었을까요? 돌과 흙으로 지어진 작고 어두운 단칸방, 어쩌면 흙먼지와 비좁음, 가난의 냄새가 배어있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병든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가장 평범하고, 가장 아픈 삶의 현장으로 친히 발걸음을 옮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의 성품입니다. 주님은 성공과 명성의 자리가 아니라, 고통과 신음의 자리로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신음하는 바로 그곳에 오십니다."
본론 1: 열병, 우리의 현실을 비추다
본문 30절은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라고 말씀합니다. 1세기 갈릴리에서 '열병'(πυρετός, 피레토스)은 단순한 감기몸살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였습니다. 항생제도, 해열제도 없던 시절, 열병은 속수무책으로 생명을 앗아가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는 단지 아픈 사람이 아니라, 가정의 중심을 잃게 만드는 위기였고, 공동체로부터 격리된 채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깊은 절망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몬의 장모가 앓던 열병이, 마치 오늘날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첫째는, '쇠퇴의 열병'입니다. 한때 가득 찼던 예배당의 빈자리가 늘어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교회의 모습은 우리 마음에 뜨거운 불안감의 열을 더합니다.
둘째는, '무기력의 열병'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향해 빛과 소금이 되라고 외치지만, 정작 우리는 세상의 조롱과 비난 앞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깊은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셋째는, '갈등의 열병'입니다. 큰 신학적 논쟁이 아니더라도, 교회 안의 작은 오해와 다툼들이 우리의 사랑과 기쁨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지금 영적 열병을 심하게 앓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시몬의 장모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 열병으로 누워 있습니다."
본론 2: '에게이렌', 부활의 능력이 유일한 대안이다
바로 그 절망의 자리, 죽음의 열기가 가득한 그 방으로 예수님께서 들어오십니다. 그분은 멀리서 말씀으로만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31절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라고 증언합니다. 주님은 질병과 부정함의 공간으로 친히 '나아가셨고', 부정한 자를 만지는 것을 금기시하던 시대에 그녀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치료 행위를 넘어, 모든 장벽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에게이렌' (ἤγειρεν)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단어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을 설명할 때 똑같이 사용된 단어입니다! 또한 이 단어는 '잠에서 깨우다'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잠든 자들을 깨우시는 분입니다. 열병으로 누워있던 여인을 일으키신 것은, 단지 병을 고치신 것이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부활의 능력을 선포하신 **'작은 부활' 사건**이었습니다.
"주님의 능력,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본론 3: '디에코네이', 섬김으로 새로운 역사를 쓰라
자, 부활의 능력으로 일어난 베드로의 장모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놀랍게도 성경은 그녀가 회복기를 가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는 우리를 지체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참된 부활의 능력은 즉각적인 순종과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수종드니라'는 헬라어로 '디에코네이'(διηκόνει) 입니다. 이 단어는 교회의 직분인 '집사'(디아코노스)와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식사를 대접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지원하는 첫 번째 '여집사'가 된 것입니다. 병상에 누워 신음하던 집이, 이제는 복음 사역의 전초기지요, 베이스캠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의 목적이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우리가 다시 부흥하는 길은, 우리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일어나 주님을 섬겼던 여인처럼, **고통받던 자가 섬기는 자가 될 때,** 거기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일어난 우리, 이제 섬기는 자로 살아갑니다."
결론: 힐링교회여, 부활의 증인으로 일어나 섬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주님은 우리의 가장 깊은 **신음의 자리**로 찾아오셨습니다. **열병으로 누워있는** 우리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부활의 능력으로 우리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왜일까요? 이제 우리로 하여금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신음의 자리에서 섬김의 자리로, 이것이 부활을 경험한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 이 밤, 이 수요기도회가 우리 힐링교회의 역사를 새로 쓰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열병을 앓던 교회에서, 열방을 살리는 교회로. 도움을 받던 성도에서, 세상을 섬기는 성도로.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기도가 그 위대한 역사의 첫 장이 될 것입니다.
함께 드리는 기도
1. 베트남 선교와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열병과 같은 뜨거운 태양과 낯선 환경 속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을 성령의 능력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지치지 않는 체력과 강건함을 주시고, 만나는 모든 영혼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는 능력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2. 사모님을 위하여
목사님의 곁에서 가장 큰 동역자로 함께하시는 사모님의 마음을 붙들어 주옵소서. 육신의 강건함과 영적인 평안을 더하여 주시고, 기도로 선교의 최전선을 지키는 사모님의 헌신 위에 하늘의 위로와 기쁨이 넘치게 하옵소서.
3. 힐링교회와 한국교회를 위하여
주님, 우리 힐링교회가 쇠퇴와 무기력의 열병에서 일어나게 하옵소서. 우리를 '에게이렌' 일으키셨사오니, 이제 우리가 기도로 '디에코네이' 섬기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옵소서. 죽어가는 한국교회에 부활의 소망을 전하는 작은 불씨가 되게 하옵소서.
4. 엘림G선교회와 열방을 위하여
엘림G선교회의 모든 계획 위에 기름 부어 주옵소서. 김해와 부산 경남, 태국, 베트남을 넘어 열방을 향한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고, 이 땅에 와 있는 이주민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거룩한 통로로 우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기도가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섬김이요, 사랑의 고백임을 믿습니다.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